[신앙단상] 82. 시대가 모래바람을 일으켜도

배봉한 요한 세례자(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부장)
배봉한 요한 세례자(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부장)

2009년 여름, 경향잡지 편집장으로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2월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 5월 23일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 교회와 사회의 큰 어른 두 분의 시신은 성대하게 땅에 묻혔지만 1월 20일 용산참사로 희생된 다섯 구의 시신은 아직 냉동고에 있습니다.

‘이렇게 떠날 수는 없다고 그들은 아직도 산 우리들을 향해 시위 중인지도 모른다. 이 분노의, 차가운 냉동고를 열어주자. 이 냉동고에 우리 모두의 것인 민주주의도 볼모로 갇혀 있다.’

송경동 시인의 외침이 장대비처럼 가슴을 후립니다. 교회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것이 작고 힘없고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을 때 더욱 그러합니다. 경향잡지 8월호는 그 현장을 눈여겨보며 그들의 하소연을 귀여겨듣고자 하였습니다.”

 

이 글이 담긴 경향잡지를 읽고 편파적이라며 격한 욕을 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시대가 부릅뜬 눈에 모래바람을 일으켜도 살아 계신 하느님 앞에서 걸어가는 심안(心眼)을 지닌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지 못한다”는 필자 수녀님의 글과 표지의 노란 해바라기가 희망처럼 보였을 때입니다.

2012년 가을, 인사동에 들러 딸의 대학 졸업작품전을 보고 대한문 옆 쌍용자동차 농성 천막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단식 38일’이라는 숫자가 적힌 비닐 천막 안에 하얀 상복을 입은 김정우 지부장이 그림같이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앞을 바쁘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사흘 뒤 그가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날 저는 술집에서 술잔을 앞에 두고 앉아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 노랫말에 꽂혀.

동갑에다 교우라고 밝혀 더욱 친밀감을 느끼며, 나직하고 분노에 찬 그의 음성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그새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시 40일을 단식한 그를 보며 예수님의 40일 광야 단식이 그냥 과장된 날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저 지긋지긋한 시대의 거리 지나왔거든/ 보게/ 찬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보게// … / 거기 그 허공만한 데 어디 있을까 보냐”(고은, ‘허공’ 중에서).

 

그야말로 지긋지긋한 시대의 거리를 지나왔는데, 서럽고, 그립고, 지긋지긋한 날들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시대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제들과 신자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올해 사순 시기 담화에서 ‘무관심의 세계화’를 지적하셨습니다. 교황님 말씀대로, 우리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