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예수 부활 대축일을 전후해 특별히 하는 일이 있다.
마음으로 가까이 지내는 교우들, 그리고 대녀들에게 안부 전화를 거는 일이다. 대모님이 살아 계신다면 맨 첫 자리에 모시겠지만,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가까이 지내는 교우나 대녀는 제법 많아졌다.
나는 교직에 있을 때, 동료들 앞에서는 물론 수업하는 도중에도 어떤 단원에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다 싶으면 조심조심 신앙 이야기를 꺼내고 은근슬쩍 전교했었다. 그러자니 동료들에게, 학생들에게 혹여 나쁜 표양을 보일까 봐 늘 깨어 있으려 노력했다. 덕분에 30여 년 여자고등학교 교사 생활 중 많은 대녀를 갖게 되었다.
대녀가 많은 게 무슨 자랑일까만, 부탁해 오면 거절할 수도 없는 게 그 일이다. 퇴직 후에도 나름대로 전교에 힘써 문단 후배나 지인들에게서 대모 서는 일을 부탁받아 스물세 명의 대녀를 두었다.
우리에게 영적 가족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꼭 대모 대녀 관계가 아니라도 성탄 때나 부활 때 안부를 주고받을 정도의 가까운 교우들을 나는 영적 가족이라고 부른다.
남편이 떠난 뒤에는 그의 대자들 부부와도 연락을 주고받으니 그들 또한 내 영적 가족이다. 보태어 내 아이들 3남매의 대부모님도 당연히 영적 가족이라 늘 안부를 주고받는다.
살다 보면 기도가 필요할 때가 있다. 기복 신앙을 좇지 말라고는 하지만, 나약한 인간이기에 어려움을 당하면 어쩔 수 없이 하느님께 매달리기 마련이다. 이럴 때스스럼없이 기도를 부탁하고, 또 부탁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영적 가족밖에 없다.
“기도해 주세요.”
“기도해 드릴게요.”
서로에게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인가. 엊그제는 참으로 오랜만에 대모님의 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사순 시기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났고, 자연스럽게 어머님의 대녀인 내 생각이 나서 안부 전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내가 먼저 챙기지 못한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나는 문득 대녀 중에 지금 연락이 닿지 않는 몇몇 사람을 떠올렸다. 대부분 옛날 교직에 있을 때 제자들이다. 현대인들은 웬 이사를 그리도 자주 하는지. 퇴직 후 몇 년은 연락이 잘 되었으나, 언제부턴가 해외로 나가기도 하고, 주소가 바뀌어 연락이 끊긴 경우가 몇 있다. 요즈음처럼 휴대폰이 있었더라면 아무리 이사를 하여도 놓치지 않았으련만.
까마득한 옛일이 떠오른다. 여름날, 다섯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둘이 이야기에 팔려 아들을 잃은 적이 있다. 마당에서 놀던 아이가 금세 없어진 것이다. 온 골목을 다 돌아다녀도 찾지 못하고 애를 태우다가, 늦게야 인근 파출소로 찾아갔다.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를 찾느라 지쳤는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파출소 의자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애를 잘 돌보지 않고 무얼 했느냐는 순경의 호통을 들으며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하던지. 아이의 말인즉 엄마가 안 놀아 주니까 심심해서 골목 밖으로 나갔는데,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나의 대녀들도 지금 어디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진 않을까? 혹여 한눈을 팔고 있거나 쉬는 신자가 되어 있진 않을까? 이대로 그냥 있다가는 훗날 하늘나라에 가서 눈도 제대로 못 맞출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그동안 소식 없던 대녀들이 한 사람이라도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찾으면 다시는 놓치지 않고 영적 가족으로 의지하며 살 텐데….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