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87. 귀향 입시 수험생들과 함께

안영 실비아(소설가)
안영 실비아(소설가)

살아가면서 가끔 느끼는 것이 있다. 평소 전혀 계획도 없었는데, 뜻밖에 주어지는 일. 거기엔 분명 하느님의 이끄심이 작용했을 거라는 믿음이다.

1999년, 새 천년은 후배에게 물려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년을 몇 년 앞두고 과감히 정든 교단을 떠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마침 우리 본당인 분당 성 요한 성당에서 성서 40주간이 시작되었다. 가르치는 생활에서 배우는 생활로 내려오니 긴장이 풀리면서 더욱 행복했다. 시작하기 참 잘했다며 1년을 보람 있게 마쳤다.

말씀에 맛을 들이자 이게 바로 하느님께 대한 효도로구나 싶어 더 공부하고 싶었다. 새 천 년을 맞아 성 바오로딸 통신성서 교육원에 등록했다. 구약과 신약 입문 과정을 끝내고 다시 중급 과정을 거쳐 마지막 바오로 영성까지 총 8년을 쉼 없이 달렸다. 모두 9년을 말씀과 함께 살았다.

그때 크게 깨닫고 아쉬워했던 것은 ‘아, 젊었을 때 이 공부를 해야 했는데…’였다. 그야말로 삶의 세세한 지침이 말씀 속에 다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내 생애 마지막 졸업식 날, 영광의 졸업장과 함께 주어진 것이 ‘성경교사 자격증’이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늘그막에 아이를 갖게 되리라는 말을 듣고 피식 웃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처럼!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자격증이 진짜로 유효해, 칠순 나이에 우리 본당 어르신 대학인 요한대학교 통합반 성경 교수로 임명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벌써 7년째, 매주 목요일이면 꽃단장을 하고 출근한다. 사회에서의 모든 지위를 내려놓고 어린이가 되어 나오신 평균 76세 삼백 명 가까운 남녀 학생들 앞에서 말씀 봉사를 하기 위해서다. 그분들은 각자의 취미반으로 흩어지기 전, 첫 시간을 나와 함께 공부한다.

나는 이 책 저 책 뒤지며 열심히 준비해 가능한 한 알기 쉽고 재미있게 말씀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무릇 모든 봉사의 첫 수혜자는 본인이듯 나도 이 일 덕분에 말씀을 깊이 배우는 즐거움과 함께 남녀 학생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노후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이를 어찌 하느님의 이끄심이라 느끼지 않겠는가.

우리 세대는 그동안 많은 입시를 겪어왔다. 중ㆍ고등학교와 대학 입시, 그보다 더 어려운 취직 입시, 혼인 입시, 그 이상 입시는 없는 줄 알았더니, 뒤늦게 훨씬 더 어려운 마지막 입시가 남아 있음을 알았다. ‘죽음 입시’다. 나는 그것이 우리가 본향으로 떠날 때 꼭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기에 ‘귀향 입시’라고 이름 지었다.

노년에 들어 결혼식보다는 가족 친지들의 장례식이나 병문안을 많이 다니게 되었다. 그때마다 잘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느낀다. 오죽하면 입시라고 생각했을까.

아무리 백 세 시대가 왔다지만 경로우대 나이를 지나면 귀향 입시 준비는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요한대학 학생들은 모두 귀향 입시 수험생인 셈이다. 그리고 이 입시를 위한 필수과목은 바로 성경 공부가 아니겠는가.

겨울나무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무성하던 나뭇잎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로 남아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의 겨울나무! 우리도 겹겹으로 덕지덕지 달고 있던 모든 것들 다 내려놓고 오롯이 가벼워진 몸이 아니면 어찌 하늘나라에 오르랴. 성경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나눔과 섬김, 용서, 비움 등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다 보면 점점 가벼워지지 않을까?

지상의 나그네 생활 다 마치고, 태초에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에덴동산,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새 하늘 새 땅을 찾아서 떠나게 될 날은 언제일까. 그날 그 시간을 설렘으로 기다리며 오늘도 열심히 성경을 읽는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