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88. 우리 어머니의 ‘성모님’

맹광호 이시도로(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수필가)
맹광호 이시도로(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수필가)

5월은 성모님의 달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성모님의 전구(轉求)와 사랑에 감사하고 찬미를 드리는 달이지요.

매년 이 5월이 되면, 저는 7년 전 90세로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어머니의 성모 신심이 아주 각별했기 때문입니다. 젊어서는 성당 레지오 활동을 많이 하셨고, 나이가 드신 다음에도 국내 여러 곳에 있는 성모성지는 물론 성모님에 관한 얘기를 듣는 모임이 있는 곳이면 어디고 열심히 찾아다니셨습니다. 차편이 마땅치 않을 때는 저에게 차량 봉사를 요청해 제가 직접 모시고 다닌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분당 형님댁에 계셨던 어머니의 방은 마치 조그만 성모 동산 같았습니다. 방 오른쪽 벽 화장대 위에는 크고 작은 성모상들이 여러 개 놓여 있었고, 성모상 주위로는 성수(聖水)병이며 아름다운 꽃들과 향내 나는 장식 초들이 가득했습니다. 고령에 거동도 불편하게 되신 이후, 아내와 제가 종종 형님댁으로 어머니를 뵈러 가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성모상 앞에 촛불을 켜고 기도서를 읽거나 묵주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한때 저는 성모님께 대한 이런 어머니의 남다른 신심을 걱정했던 적도 있습니다. 행여 성모님에 대한 공경도 결국 하느님을 가장 흠숭해야 하는 일을 위해서라는 교회 정신을 잊지 않으실까 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토록 성모님을 사랑하고 따르던 어머니의 절절한 깊은 속마음을 제가 제대로 읽지 못한 것 같아 오히려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처음 성모님에 관한 얘기를 들은 것은, 10여 년간의 전라도 피란생활을 마치고 1960년대 초 서울로 올라와 당시 세종로본당 여자 회장님댁 별채 건물에 세를 들어 살던 때의 일입니다.

개신교 신자였던 어머니가 본당 회장님을 만나 자주 천주교와 성모님에 관한 얘기를 듣고는 제일 먼저 개종을 하셨고, 이어 우리 가족 모두가 어머니를 따랐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개종을 저는 순전히 성모님 때문이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6·25 전쟁이 나기 반년 전, 나이 서른에 혼자가 되셨습니다. 남편을 잃고 참혹한 전란을 겪으면서도 넷이나 되는 어린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셨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당연히 어머니는 누군가에게 많이 의지하고 싶었을 터인데, 개신교에서는 들어볼 수 없었던 성모님의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 어머니 마음이 천주교 쪽으로 크게 움직였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더구나 자식들이 성장해서 하나둘 짝을 찾아 떠난 뒤로는 당신이 끝까지 의지할 분은 오직 성모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예수님도 과부와 가난한 사람들을 각별히 사랑하셨던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우리 어머니 쪽에서 보면 역시 같은 여자인 성모님께 먼저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 것입니다.

이번 주일 미사에 가거든 성당 마당 한 곁에 아름답게 서 계신 성모님께 어머니의 안부를 여쭤볼 생각입니다.

출처: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