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의미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삶의 가치는 어디서 느낄까. 종교 철학에서는 사후에 신에 귀속됨으로써 진정한 가치를 안다고 한다. 생전의 삶은 마른 장작과 같은 건성(乾性)이다. 불에 타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는 굳이 순서를 따진다면 진정한 생전의 삶은 철학이 먼저 나가고 인문학이 뒤따르며 다음에 과학이 뒤따른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이분법적인 삶이다. 그래서 두 개의 삶의 조화가 본질적 근본 원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완벽한 삶은 없다. 노력할 뿐이다.
지난 2월 한국의 고려대학교 졸업식에는 세계 최초로 테스형도 감당 못할 분이 등장하였다. 비록 학사 학위이지만 그 가치는 신의 경지에 이르는 철학자 탄생이었다. 70대 중반 나이에 한국으로 들어가 52년 만에 학교에 다시 입학해 졸업을 한 미국에 사는 변문수 씨다. 20대 초반 68년도에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나 3학년 1학기 재학 중 가족이 남미로 이민 가는 바람에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뒤따라 갔다가 그 후 시카고에 73년도에 어렵게 정착해 살아왔다.
초기 이민자에 수반될 수밖에 없는 밑바닥 고생을 많이 하였으며 후에 보험회사에 들어가 32년 동안 일을 하다 은퇴를 하였다. 한마디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 그러던 중 일찍이 시카고에서 만나 지극히 사랑하던 아내가 갑자기 뇌암으로 쓰러져 병간호를 오래 하였으나 6년 전 저 세상으로 안타깝게 이별을 하자 인생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해 다시 삶의 본질을 찾기 시작했다.
인간은 70대를 넘어가는 나이며는 인생을 서서히 준비하는 나이다. 그 좋던 젊은 기세는 완전히 사라지고 진정으로 뒤를 돌아다보며 자연스레 아쉬웠던 지나간 일을 되짚어 본다. 그래서 개중에는 평소 죄 많던 생을 사면 받으러 안 나가던 교회와 사찰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정말 신이라는 분은 계시나 갈날에 대해 걱정한다.
늦게 배움을 찾아 학교를 찾아가는 만학은 보통 경지의 사람이 아니면 힘들다. 생전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몰라 한이 맺혀 한글을 깨우치기 위해 가는 경우는 있어도 못다 한 학문을 머리가 굳었을 때 완성하러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것도 70대 중반에 20대 풋 젊은 학생들 속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다. 딱 아들 딸 같은 교수가 교단에 나와 가르치는데 나 같으면 글자가 어지러워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달콤한 소리라며 더욱이 손자뻘 학생들과 서예 동아리까지 같이 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기꺼이 받고자 한잔하러 서슴없이 동행하였다니 정말 철학적인 심성이 없었다면 못 할 일이다. 고려대학교에서는 물론 한국과 미국 사회에서는 최초의 일이라며 언론에서 격려가 대단하다. 그러나 그는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대답한다.
변문수 씨는 오래된 교회의 유명한 장노이기도 하다. 삶의 근본이 다르다. 우리 같은 사람은 심지가 낮아 평소에도 봉사를 하기보다 누가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불평불만이 많고 범사에 지는 것을 싫어한다. 일단 그냥 우기고 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를 따라 나도 이제 무언가를 해 볼까 하는 모범적인 생각이 잠깐 스쳤으나 이제는 완전히 기력도 소진되고 치매가 벌써와 그마저 그 기회도 잃어버렸다. 그러나 진정 삶의 가치는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 나의 곁에 오래 사귄 그와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러나 그보다 그에게 말년의 행복은 학문적 완성도 중요하지만 엄마를 보내 놓고 우울에 빠진 아버지를 한국으로 보내 만학을 추천하고 지원해 준 두 딸과 네 명의 손자에 있다.
감히 간섭할 수 있다면 그 딸들과 손자들은 벌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로서의 존재”를 기반한 형이상학적인 삶의 그림을 어려서부터 이어받아 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철학은 인생의 기본이다. 머릿속에 철학이 없으면 분뇨 덩어리 일 뿐이다. (끝)
(출처: https://www.facebook.com/brian.han.524)
(편집자 주: 저는 개인적으로, 이 글을 쓰신 분(한홍기님)이나, 주인공(변문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Facebook에서 읽게된 (시카고에 사시는) 두 분의 우정이 참 아름다와서, 글쓴이의 허락없이 옮겨 왔습니다. 주님,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